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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의문의 병


1년쯤 전부터 정강이 앞쪽이 물결무늬로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양쪽다리모두 한쪽방향으로 연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짙어지는게 아닌가.
아무런 통증도 없고 감각도 정상적이어서 신경은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일전 무심코 머리를 긁다가 아주 작은 딱지가 만져저서 손으로 뜯어냈다.
하지만 그자리는 사흘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계속해서 진물이 나왔다.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직시한 나는 다리와 머리의 상처에 대한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
혹시...
설마...
4년전 미국에서 속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으로 병원에 간길에 에이즈검사도 받은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문제 없었는데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거지?
혹시 그 병은 아니더라고 뭔가 심각한 바이러스임은 틀림없었다.
술자리에 친구들에게 색이 변한 다리와 머리속을 보여주자 절대 심각한 병이 아니라며
나보고 걱정하지 말라곤 하지만... 내가 친절하게 찢어 놓은 술안주 오징어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오늘 드디어 병원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아침일찍 회사로 출근을 했다가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한명도 없는 병원은 서너명의 간호사가 잡담을 하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다 키득거린다.
'왜들 저러는 거지.....앗! 젠장 신발을 짝짝으로 신고 왔네'
이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한참을 태연한척 앉아 있으니 한 간호사가 나를 보지 않고 눈을 딴데로 돌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언제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빵"하고 웃음이 터질게 분명했다.

이윽고 진찰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내 머리속을 0.3초간 보더니
"피부염이네요. 이틀정도 약드세요" 건성건성 이렇게 말하는게 아닌가.
난 그럴리가 없다며 다리를 걷어 정강이를 보여줬다.
한~참을 쳐다보던 의사가 말했다.
"아~....음....."
"운동화 짝짝으로 신고 오셨네"
"헤헤 ;;;;; 그게 아침에 급하게 나오다보니..." 나는 당황했다. 드디어 옆에 서있던 간호사가 빵하고
 터졌는데 주체를 못하겠는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일 하세요?"  대뜸 의사가 물었다
아하 내가 무슨 세균이 살만한 작업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묻는 건가본데...
"그냥 책상에 앉아서..." 난 말끝을 흐렸다.
"혹시 책상밑에 난로 펴놨어요?"
허걱 그러고 보니 작년 겨울부터 책상밑에 전기난로를 켜놓았는데 어떻게 그걸 한방에 알았지?
내가 의사를 만나러 온건지 점쟁이를 만나러 온건지...
진짜 용하다 용해

1년넘게 점점 괴사하던 내다리가 전기난로 때문이라니..
2500원의 진료비를 내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났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아무래도 피부과가 아닌 정신과를 갔어야 하나보다

그런데 퇴근시간까지 회사 사람들에게 신발이 짝짝인걸 들키지 않고 넘어 갈 수 있을까?